삶의 정도-윤석철

<삶의 정도> 윤석철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

지난 2010년 8월, 칠레 북부의 산호세 구리광산에서 낙반사고가 발생했다. 그 사고로 지하 700m의 갱도에 갇혔다가 69일 만에 극적으로 구출된 33인의 칠레 광부 이야기는 당시 전 세계적인 뉴스였다. 처음에 칠레 정부는 매몰된 광부들을 크리스마스에나 구출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이것은 광부들에게 너무나 길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칠레 정부는 ‘구출시간 최소화’를 목적함수로 하였고, 목적함수 달성을 위한 수단매체로서 드릴 공법만이 아닌 망치 공법을 채택했다. 그 결과 구출시간이 두 달 이상 단축되었고 단 한사람의 사망자도 없이 모두가 구출되었다. 코스트 절감 같은 복잡한 문제는 제거되고, ‘단순화’된 목적함수와 그에 필요한 수단매체라는 이진법적 구조로 문제가 간결화 되면서 인명구조에 성공한 것이다.

윤석철 한양대 석좌교수는 『삶의 정도』에서 ‘복잡함complexity’을 떠나 ‘간결함simplicity’을 추구하라고 말한다. 저자는 ‘한국의 피터 드러커’로 불린다. 서울대 독문과에서 물리학과로 전과한 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전기공학을 공부하고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을 넘나들며 양 분야를 아우르는 독특한 학문 역정으로 유명하다. ‘한국이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하는 고민이 윤석철 교수가 여러 방면의 공부를 하게 된 출발점이었다. 독일의 경제발전 모델을 배우고 싶어 독문학을 전공으로 선택했고,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과학과 기술 발전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물리학과 전기공학을 공부했다. 또 미국 유학 시절 만난 한국 기업인들로부터 ‘경영학을 공부해 기업을 도와 달라’는 말을 들은 것이 경영학으로 들어선 계기가 됐다고 한다. 그의 책에서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학문적 넓이와 깊이를 느끼게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윤석철 교수는 10년 간격으로 책을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경영학적 사고의 틀』(1981), 『프린시피아 매네지멘타』(1991), 『경영학의 진리체계』(2001)에 이어 2011년에 펴낸 이 책은 저자의 학문 세계와 철학을 집대성한 역작으로 꼽힌다.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사람들의 머릿속 생각도 함께 복잡해지고, 욕망과 가치관도 복잡해졌다. 물리학적으로 말하면 엔트로피, 즉 무질서가 증가하는 것이다. 현상을 파악하기가 갈수록 힘들어지고 해법을 찾기는 더 어려워지고 있다. 복잡한 것은 자기 스스로의 복잡함에 얽매여 힘이 없어진다. 단순화 쪽으로 진화해야 살아남는다. 기업도 조직이 복잡해지면서 경영 이념과 목표가 혼란에 빠지고, 의사결정의 기준이 모호해진다. 자연 의사결정의 속도도 느려지게 된다. 그런 가운데 의사결정을 내리려면 중요한 것을 찾아내고, 덜 중요한 것은 버려 문제를 간결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어떻게 그렇게 완벽한 다비드 조각상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묻는 교황에게 미켈란젤로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간단합니다. 다비드가 아닌 것은 모두 제거하면 됩니다.”

남녘 장마 진다 소리에
습관처럼 안부 전화 누르다가
아 이젠 안 계시지 —– (‘한여름’, 고두현)

‘늦게 온 소포’라는 시로 유명한 고두현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인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에 실린 ‘한여름’이라는 시의 전문이다. 원래는 이보다 한참 길었는데 군더더기를 빼고 줄였더니 달랑 세 줄만 남더라 하는 애기를 술 마시는 자리에서 고 시인에게 들은 기억이 난다. 세 줄 만으로 훌륭한 시를 쓴 것이다. 어쩌면 혁신은 더하는 것이 아니라 빼는 것인지 모른다.

저자는 ‘목적함수’와 ‘수단매체’라는 2개의 개념으로 인간 삶의 세계를 분석하며, 이것으로 삶에 필요한 모든 의사결정이 가능하다고 판단한다. 목적함수란 인간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의 방향이며, 수단매체란 목적함수를 달성하기 위해서 필요한 수단적 도구이다. ‘칠레 산호세 광산 광부 구출사건’은 간결화의 위력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반면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경쟁 속 이익 최대화 목적함수가 만들어내는 ‘부조리’의 케이스도 있다. 1960년대 후반, 미국의 한 자동차 회사가 수은공해의 위험성을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텔레비전 방영 직전, 이 회사는 사내에서 시사회를 가졌는데 이 자리에서 심각한 의견이 나왔다. 다큐멘터리 방영 1시간 동안 ‘수은’이라는 단어, 즉 ‘머큐리mercury’가 수백 번 음성으로 나간다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왜냐하면 이는 이 회사의 경쟁사 자동차 모델 ‘머큐리Mercury’를 수천만 소비자들의 귀에 심어주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결국 수백만 달러의 연구비와 제작비가 들어간 다큐멘터리는 폐기되었고, 일반 국민들은 수은의 위험에 대해 알 기회를 박탈당한 셈이 되었다.

그런데 수단매체가 아무리 좋아도 목적함수 없이는 소용없다. 저자는 먼저 의미 있는 목적함수를 설정하라고 조언한다. 유한한 자원을 살아가는 생명체인 인간은 자원과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코스트 최소화minimization of cost’를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가장 중요한 목적함수로 삼아야 한다. 코스트 최소화 목적함수와 쌍벽을 이루는 또 하나의 목적함수를 들자면 ‘이익 최대화maximization of profit’이다. 경제 활동의 자유가 보장되는 현대 사회에서 이익 최대화 목적함수는 사회의 경제 발전을 견인하는 원동력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이익 최대화 목적함수가 ‘그림자 코스트shadow cost’를 유발하고, 이것이 고용 축소의 주범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이익 최대화 목적함수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 즉 생존부등식 이론을 탐구해야 한다. 저자가 말하는 생존부등식은 가치(V)>가격(P)>원가(C)로 표시할 수 있다. ‘소비자가 느끼는 제품의 가치가 가격보다 크고, 또 가격은 생산자가 부담하는 원가보다 커야 한다’는 논리다. 소비자는 가치에서 가격을 뺀 만큼을 순가치로 얻고, 생산자는 가격에서 원가를 뺀 만큼의 순이익을 얻을 수 있다. 즉 가격 이상의 가치를 주는 기업이 성공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또 수단매체와 목적함수를 결합하는 생존부등식의 충족요건으로 감수성, 상상력, 탐색시행을 꼽고 있다. 특히 한국적 풍토에서 혁신적인 기업가정신과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올림픽 양궁에서 금메달을 가장 많이 따는 나라는 한국이다. 하지만 올림픽 성화 점화에 가장 먼저 불화살을 이용한 나라는 스페인이다. 스페인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불화살을 이용한 성화 점화라는 참신한 방법을 이용하여 세계인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심었다. 만약 불화살 점화를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했다면 우리나라가 양궁의 강대국임을 과시하는 한편, 우리가 생산한 정밀 조립제품의 품질을 선전하는 계기도 마련했을 것이다. 아쉽게도 우리는 활을 잘 쏘면서도 활을 쏘아 성화에 불을 붙인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자유로운 분위기와 토양, 그리고 실패할 수 있는 여유가 숨 쉬는 조직 분위기가 상상력 부족으로 나타난 탓이다.(225∼226쪽)

학문의 진정한 가치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데 있다. 문제의 구조가 복잡해지고 상호 연결이 심오해진 오늘날에는 단편적이고 부분적인 방법만 갖고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 여러 각도에서 문제를 보고 해답을 찾는 통섭統攝의 방법론이 필요한 시대다. 수많은 사례와 사진.그림.도표를 동원하여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단순하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복잡함을 떠나 간결함을 추구하라’는 것과 ‘이익을 가치 위에 두지 말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삶의 정도正道는 단기최적short-term optimum과 장기최적long-term optimum, 부분최적partial optimum과 전체최적total optimum 사이의 조화를 모색하는 데 있다. 가치 있고 올바른 삶을 살아가는 삶의 정도를 생각할 때마다 맨 먼저 떠올리는 책이다.

 

박일호 이야기경영연구소 연수교육단장 (서평가/이야기경영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