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흥준 지음, 더퀘스트 펴냄.

임흥준 지음, 더퀘스트 펴냄.

우리나라가 닮고 싶은 모델로 떠올리는 나라 중 하나가 스위스다. 스위스는 유엔이 158개국을 대상으로 국민 행복도를 조사한 ‘2015 세계 행복 보고서’에서 1위를 차지했다. 우리나라와는 강대국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위치와 지하자원이 부족함에도 경제 강국을 이룬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근세까지만 해도 스위스는 공업 기반이 거의 없던 삼류 농업 국가에 지나지 않는 유럽의 최빈국이었다. 부존자원이 척박했고, 가진 것이라고는 산과 호전적인 기질만 다분한 사람들뿐이었다. 밀크초콜릿을 먹으며 요들송이나 부르던 나라가 스위스다. 그런 나라가 일류국가가 된 역사적 배경에는 스위스 용병이 자리 잡고 있다.

스위스 용병 부대가 유럽 역사의 중앙 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전투력 못지않게 그들이 보여준 철저한 계약정신의 역할이 컸다. 1527년에 교황 클레멘트 7세가 기거하던 교황청이 신성 로마군에게 점령당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발생했다. 2만 명의 로마군의 공격으로 교황청의 수비가 뚫리고, 189명의 스위스 용병으로 구성된 근위대만이 교황을 지키게 되었다. 이미 전세가 기울었고 저항해봤자 죽을게 불 보듯 뻔한 위기상황이었다. 근위대는 선택을 해야 했다. 교황은 자신들을 고용한 고용주다. 고용주를 버리고 도망치면 목숨은 건지겠지만 용병으로서의 불명예를 감수해야 한다. 결국 스위스 근위대는 계약의 충실한 이행을 위하여 도망가는 대신 전멸을 택했다. 근위대가 성베드로 성당으로 통하는 길목을 막고 2만 병력을 상대하며 시간을 버는 동안 교황은 피신하는 데 간신히 성공했다. 대신 근위대는 147명이 전사하는 엄청난 희생을 치러야 했다. 이 사건은 전 유럽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 일에 감동한 교황청은 이탈리아인이 아닌 스위스 용병들로만 근위대를 구성하는 전통을 만들었고, 이 전통은 이후로도 무려 500년 동안이나 이어졌다. 대가를 받고 그 계약 관계에 따라 움직이며 고용주를 위해 싸웠던 용병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비즈니스맨들이었던 셈이다. 세계역사에서 배우는 비즈니스 비결을 담은 『나는 세계역사에서 비즈니스를 배웠다』에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다.

이 책은 미니 프린터 세계 2위 글로벌 기업인 빅솔론의 해외영업부장인 저자가 세계역사에서 배운 비즈니스 노하우를 담고 있다. 빅솔론은 국내 최초로 미니 프린터 개발에 성공한 삼성전기에서 2003년 1월에 분사한 기업이다. 미니 프린터는 가게나 식당에서 영수증을 인쇄하거나 바코드를 찍는데 사용되는 작은 사이즈의 프린터를 말한다. 빅솔론이 뒤늦게 동종업계에 뛰어들었을 당시에는 이미 엡손, 시티즌, 스타 같은 유명한 일본 브랜드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분사 10년 만인 2013년에 빅솔론은 엄청난 성과를 올렸다. 매출 840억 원, 영업이익 150억 원을 달성하며 세계 2위 기업으로 성장했고, 코스닥 ‘히든챔피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지구를 50번 일주할 만큼의 거리를 비행했고 전 세계 60개국 이상을 발로 밟았다. 1년의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보낸 셈이다.

그렇다고 저자가 처음부터 프로 비즈니스맨의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니다. 은행원으로 잠시 일했을 뿐 영업과는 전혀 무관한 삶을 살았다. 안정적이지만 보수적인 은행을 박차고 나온 것은 순전히 그의 내면에 꿈틀거리고 있던 해외영업에 대한 도전의식이었다. 그가 새로 들어간 삼성전기가 미니프린터를 생산판매하는 팀을 분사할 때 저자에게는 또다시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졌다. ‘삼성’이라는 커다란 조직에 안락하게 머물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회사와 함께 모험을 할 것인가. 그는 ‘보험’ 대신 ‘모험’을 택했다. 그러나 영업 경험이 없는 초짜 비즈니스맨이었던 저자에게는 도움을 받을 선배나 그럴듯한 매뉴얼은 물론 찾아갈 거래처도 없었다. 아침저녁으로 영어 학원과 중국어 학원을 동시에 다니면서 어학공부를 하고, 구할 수 있는 모든 미니 프린터를 직접 분해조립해보면서 제품의 작동 원리를 하나씩 깨우쳐 나가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거듭되는 실패와 좌절로 몸과 마음이 녹초가 되어있을 때 불현듯 대학 시절 교수님의 말이 떠올랐다. “경영학의 많은 용어들이 군사 용어에서 유래됐다. 전략캠페인게릴라 마케팅 등이다. 비즈니스도 전쟁도 사람이 하는 일이어서 기계적인 인과관계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영업의 기본은 사람’이라는 깨달음이 섬광처럼 찾아온 것이다. 시장과 고객을 이해하지 못하는 영업자에게 성공은 신기루에 불과한 법이다. 그때부터 저자는 역사서, 특히 전쟁사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비즈니스는 결국 ‘인간’을 다루는 일이므로 역사에서 성공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존의 사고방식과 전략으로는 강담할 수 없는 위기가 찾아왔을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디지털 유목민으로서의 창조적이고 유연한 사고다. 그리고 그 유연한 사고를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은 선입견과 고정관념이다.(82쪽)

그의 생각은 정확했다. 역사 공부는 그가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영업전쟁에서 승승장구하며 당당히 업계의 거물로 우뚝 설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역사는 세상과 미래를 읽는 더없이 좋은 도구다. 그럼에도 치열한 비즈니스 현장에서 한가하게 역사지식이나 역사에서 배운 교훈을 활용하는 일은 언뜻 상상하기 힘들다. 그런데 『나는 세계역사에서 비즈니스를 배웠다』는 책에서 배운 역사적 지식을 비즈니스 현장에 곧바로 써먹을 수 있는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저자가 체험한 비즈니스 사례를 세계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과 짝을 이루어 이야기식으로 풀어 소개하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은 일화가 그 중 하나다. 새로운 거래선을 찾아 유럽을 종횡무진 하던 저자는 ‘발칸반도의 화약고’라고 불리는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로 출장을 앞두고 고민이 되었다. 준전시나 다름없는 곳에 목숨을 내놓고 가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앞에서 언급한 스위스 용병을 떠올리고, 다른 업체는 모두 취소한 출장약속을 혼자서 지킴으로써 파트너와 확고한 신뢰관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경쟁업체와 특허분쟁에 휘말려 곤란을 겪었을 때는 신라장군 이사부가 사용했던 나무사자 전술을 응용하여 이를 슬기롭게 해결했다. 그밖에도 칭기즈칸의 창의적이고 유연한 발상,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단번에 전황을 뒤집은 둘리틀 공습 작전 같은 동서양 역사를 넘나들며 비즈니스 감각을 일깨워주는 흥미롭고 다양한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이 책은 전쟁 이야기를 들려주는 역사서가 아니고 신화 창조류의 성공 스토리도 아니다. 대신 방대한 인문학적 역사 지식과 실전 비즈니스 노하우가 생동감 있게 오롯하게 담겨 있는 책이다. 역사 속 사건과 인물이 비즈니스 현장을 누비며 겪었던 생생한 경험들과 기가 막히게 버무려져 시종일관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비즈니스의 주옥같은 비법을 이렇게 책으로 내놓기 아까웠을 것” 이라는 추천사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박일호 이야기경영연구소 연수교육단장(서평가/이야기경영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