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11일이니까, 11번. 일어나서 34페이지부터 37페이지까지 읽어봐.”

초등학교 시절 수업 시간에 일어나서 소리 내 책을 읽으신 경험 다들 있으시죠?

우리는 모두 소리 내 책을 읽는, 즉 ‘낭독’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학년이 올라갈수록 낭독 횟수는 줄어들고, 어른이 된 뒤에는 소리 내 책을 읽는 일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소리 내 책을 읽은 게 언제인가요?

오랜 기간 낭독 독서법을 실천해온 박일호 이야기경영연구소 연수교육사업단장은 낭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묵독이 원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언제부터인가 정보를 습득하는 법으로 고정되어 버렸고, 묵독이 보편화되면서 자연스럽게 몸과 마음의 분리가 일어나게 됐다. 사실 근대 이전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낭송이나 암송이 보편적인 공부법이었다. 구술문화의 시대라 낭독이 대세였고, 언제나 소리를 내서 읽었다. 묵독은 책을 읽는 여러 가지 방법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다. 성 에마뉘엘의 일기에 이런 게 나온다. “오늘 무서운 것을 보았다. 서재에 들어가니 조카가 소리를 내지 않고 책을 읽고 있었다.” 당시 묵독은 악마의 독서법이었다. 묵독이 인간에게 허용된 건 12세기에 이르러서다. 그러다 18세기를 전후하여 부르주아 시민계급의 등장과 더불어 ‘개인의 고독한 독서’인 묵독이 점차 부각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인쇄술의 발달로 책이 대중화되고 개인주의가 정착되면서 묵독이 대세가 되었고, 자연히 책읽기의 생동감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한국의 전통적인 공부에서도 경전의 음독이 필수였다. 조선시대만 해도 낭독은 아주 일반적인 방법이었다. 저잣거리에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책을 읽어주는 전기수(傳奇叟)라는 직업이 1960년대까지 있을 정도였다. 강독사로도 불렸던 그들은 글을 잘 읽을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데다가 책이란 것이 아무나 소유할 수 없을 정도로 귀한 시절에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나 재상가에 드나들며 소설을 읽어주고 그 대가로 돈을 받았다. 또 그리 멀지 않은 옛날에는 서당에서 천자문 읽는 소리를 흔하게 들을 수 있었고, 초등학교 교실에서는 큰소리로 책을 읽도록 시켰다.

책이 귀하고 문맹이 많았던 시절과 오늘날의 상황은 다릅니다. 지금은 누구나 쉽게 책을 접할 수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책은 물론 디지털 텍스트가 넘쳐나 읽어야 할 ‘정보’가 너무나 많아 속독이 필요합니다. 또한 소리 내 책을 읽을 공간도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낭독은 여전히 필요한 독서법입니다.
박일호 단장은 “책을 직접 소리 내어 읽는 것은 책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강조합니다.

낭독은 느리지만 단단한 독서법이다. 처음 대하는 텍스트라도 읽다보면 목소리가 알아서 띄어 읽고 마침표를 찍어준다. 낭독은 스무 번씩 꼭꼭 씹어 삼키는 밥처럼 책의 영양가를 남김없이 흡수하는 방법이다. 문장과 문장 사이 행간의 뜻도 낭독 사이의 작은 멈춤과 호흡 안에서 고스란히 살아난다. 몽글몽글하게 책 속에 웅크리고 있던 활자들이 소리 내어 낭독하는 순간 비로소 그 뜻을 죽 펴고 세상 속으로 나온다. 건너뛸 수도 없고, 대충 훑어볼 수도 없고, 무조건 읽는 속도를 높일 수도 없다. 수시로 삼천포로 빠지려는 책읽기를 원래 자리로 불러들인다. 책읽기의 고수가 되는 비법이 바로 낭독이다. 심지어 낭독은 글쓰기에도 마법을 제공한다. 낭독을 통한 퇴고처럼 확실한 것도 없다. 소리 내어 읽었을 때 매끄럽게 읽히면 잘 쓴 글이지만, 턱턱 막힌다면 고쳐야 할 글이다.

이야기경영연구소는 경북 칠곡군 교육문화회관의 위탁을 받아 교육생 30명을 대상으로 낭독지도사 양성과정 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3월 11일 박일호 단장의 첫 강의를 시작으로 5월 20일까지 매주 금요일 3시간 총 10회의 강의가 이뤄집니다.

성우 송정희, 시인 장석주, 소리테파리 강사 김은애, 낭독극 배우 김진휘 씨 등 낭독에 일가견이 있는 전문가들이 이번 교육에 강사로 나섭니다.

이야기경영연구소는 이번 과정을 시작으로 ‘낭독의 힘’을 더 많은 분들에게 체계적으로 전하고자 합니다. 낭독 교육에 관심 있는 단체나 개인은 이메일 story@storybiz.co.kr 로 문의하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