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줏대감’이라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어떤 집단이나 지역에서 오래 머물러 그 집단이나 지역 사정에 훤한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는 ‘터주’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고대에서부터 우리 민족은 세상 만물 어디에나 신(神)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습니다. ‘터’를 지키는 신이 터주이고, 집을 짓고 지키며 번성케 하는 신을 ‘성주’라고 합니다. 자식을 점지해 출산케 하는 신은 ‘삼신’(혹은 ‘산신’)이라고 하죠. 옛 가옥에서 부엌은 음식을 조리하는 공간인 동시에 난방을 책임지는, 즉 ‘불’을 관장하는 곳이었습니다. 부엌에서는 ‘조왕신’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집안의 안녕과 번성을 기원하며 성주, 터주, 삼신, 조왕 등에게 ‘고사’(告祀)를 지냈습니다. 지역에 따라 연초 정월에, 또는 가을 수확이 끝난 10월에 지내는 등 정기적으로 고사를 지내기도 했지만, 집을 새로 짓거나 이사를 하면 꼭 고사를 지냈습니다. 일종의 ‘전입신고’인 셈이죠.
외래 종교의 유입과 생활 방식의 변화로 인해 고사 풍습이 예전처럼 활발하지는 않지만 하나의 의례로 여전히 고사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수십 층의 초현대식 빌딩을 지을 때도 고사상을 차리고, 영화나 드라마 촬영이 시작될 때도 고사는 거의 필수 코스이며, 새 차를 뽑으면 안전을 기원하며 고사를 지내기도 합니다. 신앙적 의미는 희미해졌지만, 어떤 일을 도모할 때 주변에 새 출발을 알리고 구성원들의 의지를 다지는 의미는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 아닐까요.
서울혁신파크에 입주한 이야기경영연구소가 16일 고사상을 차려놓고 개소식을 열었습니다. 과일과 실타래를 감은 북어, 액을 막는 붉은 팥으로 빚은 시루떡, 막걸리를 올렸습니다. 고사상의 하이라이트인 돼지머리는 ‘종이접기’ 돼지머리를 이용했습니다. 이야기경영연구소에도, 여러분들에게도, 나아가 이 세상에 두루 복이 퍼져 나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