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미래유산아카데미 2차 답사 (서울역~광화문)

작성자
김칠환
작성일
2016-10-16 23:08
조회
2731
서울미래유산아카데미 2차 답사 (서울역~광화문)

비가 내리는데도 서울역 광장은 서울미래유산 서울역~광화문 코스를 답사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서울역은 현재 KTX역사가 새로 건축되어 있고, ‘옛 서울역’ 건물은 공식 명칭이 ‘문화역 서울 284’이다. ‘284’는 사적 지정 번호다.

서울역 시계탑, 서울역 광장! 서울역에서 남산이 한 눈에 들어오던 시절부터 인근에서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했던 나로서는 ‘서울역’ 하면 다른 사람들보다도 많은 추억이 어린 곳이다.

광장에 우람하게 서 있는 강우규(1855~1920) 의사의 동상 너머로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건물이 보인다. 1919년 3.1운동 하루 전 날. 당시 UPI 통신원 엘버트 테일러(Albert .W.Taylor)의 부인이 이 병원에서 첫 아들을 낳았다. 저녁에 병원에 들러 산모와 아이를 보던 중 침대 밑에서 종이뭉치가 떨어진 것을 보게 된 것이 그가 이후에 맺게되는 우리나라와 깊은 인연을 예고한 것인지 모른다. 이 병원 간호사가 일제의 눈을 피해 아이의 침대 밑에 숨긴 ‘3.1 독립선언서’ 이었다. 그는 즉시 동생을 도쿄로 보내서 전 세계에 타전되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3.1독립운동이 시작과 동시에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이다.

서울역 지하도를 통해 간 곳은 남대문 부근 서울상공회의소 건물 앞이다. 남대문과 서울 한양도성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서울상공회의소에는 입구에 성곽 표시가 되어 있고, 특히 진입로 바닥엔 다른 곳과 달리 흰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서울 한성도성 위치를 표시한 것이라고 한다.

조금 위쪽으로 남대문 지하차도도 서울미래문화유산에 포함된 곳이다.

이어서 서울광장이다. 서울광장 또한 격변의 서울을 알려주는 곳이지만 특히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서울시청 건물 정면의 원형시계였다. 이 시계는 2012년 10월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신문고의 모양을 상징화한 도안을 채용해 지름 2.7m 크기로 제작하여 기증한 것이라고 한다. GPS 위성신호 시스템을 도입해 정밀도를 높인 것으로, ㈜ ‘로만손’에서 제작한 시계는 개성공단에서 만들어져 남북경제협력의 상징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이어서 광화문 광장 쪽으로 올라간다. 현재 서울특별시 의회건물로 사용되고 있는 옛 ‘부민관’(府民館)자리다. 광복 직전에 대한애국청년단 강윤국, 조문기, 유만수 3인이 친일 집회에 사제폭탄을 터트린 곳이고, 부근은 ‘4.19혁명의 중심지’가 된 곳이다.

조금 올라가 ‘동화면세점’ 건물 직전에 도로원표 공원이 있다. 이름만 공원이고 소규모 표지석만 있는 곳이다. 도로원표(道路元標)는 도로의 기점과 종점 또는 경과지를 표시한 것이다. 이곳은 서울과 전국 주요 도시간의 도로상 거리를 표시하는 기준점이 되는 곳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14년에 최초로 설치되었다고 한다. 도로원표는 이곳 말고도 광화문 사거리 부근에 있는 ‘고종즉위40년칭경기념비전’ 안에도 있다. 비각은 순종 때 설립한 것이나 도로원표는 일제 강점기에 설치한 것이다.

현재 도로원표는 도로법 시행령을 통해 각 시, 군에 1개를 설치하도록 되어 있어 주로 각 시청 또는 군청 등 행정의 중심지에 설치되어 있다. 예외로 서울특별시 도로원표의 위치는 세종로 광화문 광장의 중앙으로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도로원표가 처음 세워진 것은 1914년이다. 당시 경성부 광화문통(지금의 세종로) 중앙에 70cm 높이의 화강암 원표를 세웠다, 이후 1935년 칭경기념비전 옆으로 옮겼다가 1997년 세종 네거리에 새로 설치하였다. 새로 설치된 도로원표는 처음 설치된 곳에서 남쪽으로 151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당일 비가 많이 내리는 중에도 예정된 시간을 넘기면서까지 열정적으로 해설해주신 권기봉 작가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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