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말이 무기가 되는 끔찍한 세상에 詩는 말의 악기"

작성자
김 지연
작성일
2016-09-08 09:20
조회
912

문정희·정호승 등 시 낭독 캠프
경북 칠곡… 80代 할머니도 참여


시인과 독자들이 숲에서 만났다.

경북 칠곡군과 이야기 경영연구소가 6~7일 경북 칠곡 송정 휴양림에 시인 문정희·정호승·장석주·송찬호·고두현·김선우·박준을 초청한 가운데 독자 100여 명이 참가한 시 낭독 캠프를 열었다.

독자들은 대부분 서울에서 시인들과 함께 출발해 버스를 타고 현장에 도착한 시 애호가였다. 이날 출연한 시인들의 대표 시를 낭독하는 경연도 펼쳐졌다. 칠곡군 주민들 중에선 공동 시집 '시가 뭐고!'를 낸 할머니 4명도 참석해 시를 낭독했다. 평균 연령 84세의 할머니 89명이 뒤늦게 한글을 깨친 뒤 쓴 시를 모아 지난해 펴낸 이 시집은 지금껏 5쇄를 찍었을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칠곡군은 시 창작과 낭독 등 주민들을 위한 인문학 강좌를 펼치는 지자체의 모범 사례로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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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칠곡군에서 열린 시 낭독 캠프에서“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것을 태어나게 하는 것이 시 쓰기”라고 강조한 문정희 시인. /박해현 기자

문정희 시인은 "말이 무기(武器)가 되는 끔찍한 세상에서 시는 말의 악기(樂器)"라며 "올해 남미와 러시아에서도 시 낭독회를 가졌지만 오늘 동네 우물가 같은 자리에 와서 더욱 기쁘다"고 독자들을 맞았다. 문 시인은 "시는 자라나는 산"이라며 "시인이 정상에 올랐다고 생각하는 순간 산의 키는 자라나므로 시인은 정해진 실패를 향해 영원히 오르고 또 오를 뿐"이라고 했다.

문정희 시인은 한국적 가부장제에서 고통받는 여성의 삶을 진솔한 언어로 노래해 국제적으로도 주목받았다. 한 독자가 "남편을 가리켜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준 남자'라고 쓰셨는데, 부군은 어떤 분이신가"라고 물어 청중을 웃겼다. 문 시인은 "우리 남편은 남들이 내 시에 대해 이야기하면 '그 시에서 아내를 남편으로 바꿔 읽으면 된다'라고 답한다"며 "옛말에 '서당 개 3년'이라고 하듯이 남편도 알아서 말도 잘하게 되더라"라고 해 객석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시 60여 편이 노래로 만들어졌을 정도로 애독자가 많은 정호승 시인은 "시는 고통의 꽃"이라고 해 청중을 숙연케 했다. 그는 "내가 존재하기 때문에 고통이 존재하는 것인데 고통이 없기를 바란다는 것은 내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라며 "살아가면서 내가 겪는 고통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그것을 좀 더 알고 싶어서 시를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가 고통의 꽃이라는 것을 알고 나면 시를 더 쓰게 된다"며 "모든 사람은 시인"이라고 강조했다.

장석주 시인은 "내가 행복했으면 지금껏 시 800여 편을 쓰지 않았을 것"이라며 "김소월을 비롯한 시인들은 자신의 불행을 문학과 맞바꾼 사람들"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10년 전에 우연히 쓴 시"라며 수확의 계절에 어울리는 시 '대추 한 알'을 낭독했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낱.'

칠곡군 주민 중 김말순 할머니는 사투리를 소리 나는 대로 쓴 자작시 '비가 와야대갰다'를 낭독했다. '비가 쏟아져 오면 좋갰다/ 풍년이 와야지대갰다/ 졸졸 와야지/ 고구마, 고추, 콩, 도라지/ 그래야 생산이 나지'라고 해 청중의 박수를 받았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