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1]‘시낭독 열차’탄 장석주 시인, 칠곡 할매시인들 만나다

작성자
leesuin
작성일
2016-05-30 09:15
조회
1250
기사 게시 날짜 2016.05.29

장석주·박연준 시인과 함께하는 '칠곡 시낭독 열차'



"보통 사람들은 불행이 올 때 피하려 하지만 시인들은 정면으로 부딪쳐 감싸안는다. 시인에게 시는 자신의 '비석'이다."

스무살에 시인으로 등단해 41년째 시를 쓰고 있는 장석주(61) 시인과 그의 반려자 박연준(36) 시인이 28일 경북 칠곡군의 할머니 시인들을 만나 강연했다.

이들 할머니 시인들은 최근 몇년간 칠곡군이 진행한 '성인문해교육'을 통해 한글을 배운 후 지난해 '시가 뭐고'(삶창)이라는 시집을 펴낸 소위 '칠곡 할매 시인들'이다.

장석주 시인은 이날 '사랑, 시로 꽃피다'를 주제로 한 '칠곡 시낭독 열차'프로그램의 강연자로 나서 약 70여명의 독자와 서울역에서 기차로 출발했다. 오후에 칠곡군 약목면 남계마을에 도착한 후 강금연 등 5명의 할머니 시인이 참석한 강연회 및 시낭송 자리에서 장석주 시인은 "41년간 시를 써왔지만 아직도 시를 모르겠다"며 강연을 시작했다.

‘칠곡 시낭독 열차’는 이야기경영연구소가 '시 읽는 사회를 만들자'는 취지로 기획한 일종의 문화여행 프로그램이다. 할머니 시인들이 사는 칠곡행 열차를 타고 가는 동안 초청시인이 시낭독과 문학강연도 하고 독자와 이야기도 나눈다. 이날 첫 번째 주자로 장석주와 박연준이 나섰고 6월엔 정호승, 9월 문정희, 10월 문태준 시인이 이어서 칠곡군을 방문한다.

장 시인은 러시아 시인 요세프 브로드스키(1940~1996)의 예를 들면서 "시인은 '잉여'이고 '무용'한 인간으로 보이지만 시와 문학은 문명을 이룩하고 우리를 좀더 나은 인간이 되도록 이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시인이었던 브로드스키는 구 소련에서 노동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고발당해 재판받았다. 재판정에서 그는 시인이라고 자신의 직업을 밝혔고 판사는 '누가 당신을 시인으로 임명했는가' 물었다. 브로드스키는 '아무도 나를 인간으로 임명하지 않았듯이 누구도 나를 시인으로 임명하지 않았다'고 당당하게 대답했다."

시인은 이어 "하지만 판사는 시인이 '인민의 피를 빨아먹는 사람'이라며 브로드스키에게 유죄를 선고해 그는 시베리아로 끌려가 5년간 강제노동을 해야 했다. 그후 미국으로 망명한 브로드스키는 1987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장석주 시인은 "보통 사람은 불행이 올때 맞부딪치지 않고 피하지만 시인은 '불행이여 어서 오라'의 태도를 가지고 불행과 정면으로 맞선다"면서 "시인에게 시는 이같은 불행에 대한 기록인 '비석'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불행에 맞선 이들의 시를 읽음으로써 독자들은 좀더 나은 인간이 되고 이타적인 마음을 갖게 된다"면서 시의 존재 의의를 강조했다.

이어진 할머니 시인들의 시낭송 자리에서 강금연 할머니의 신작시 '아들아'가 낭송되자 시인 본인은 물론 청중들도 눈물을 흘렸다. 박연준 시인은 '아들아' 시에 대해 "아들아, 하고 할머니가 부른 것만으로도 찡했다. 칠곡 할머니들의 시는 시인으로서의 '초심'을 되새기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다음은 강금연 시인의 시 '아들아' 전문이다. 괄호 안은 표준어로 바꾼 형태다.

"아들아
내 아들 나가 시끈(씻은) 물도
안 내빼릴라 캐다(안 내버리려고 했다)
그 아들 노코 올머너 조안는데(그 아들 낳고 얼마나 좋았는데)
이제 그 아들한태 미안하다
네 몸띠가 성하지를 모타이(내 몸뚱이가 성하지 못해)
아들 미느리 욕빈다(아들 며느리 고생하게 한다)
자나깨나 걱정해주는
아들이 참 고맙다"

◇장석주·박연준 시인은

장석주 시인은 1975년 시로 등단해 시인, 소설가, 문학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2000년부터 경기도 안성에 ‘수졸재’라는 집을 지어 살던 그는 10년 열애 끝에 지난해 1월 혼인신고를 하며 25살 차이 박연준 시인을 반려자로 맞이했다.

박연준 시인은 2004년 등단한 후 시집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과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를 냈다. 결혼식 대신 두 사람은 호주 시드니 체류기인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를 공동으로 쓰고 펴냈다.




권영미 기자(ungaunga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