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정호승 시인 "삼라만상에 외롭지 않은 존재는 없어"

작성자
leesuin
작성일
2016-04-25 10:04
조회
1169
기사 게시 날짜 2016. 04. 24

고향 대구 범어천 찾은 정호승 시인



일자(一字)형 낡은 한옥은 붉은 벽돌로 옷을 갈아입었다. 밭이던 옛집 건너엔 범어3동 주민센터가, 인근 가죽공장엔 아파트가 들어섰다. 새벽닭이 울면 항상 찾던 담임선생님 댁의 문설주도 사라졌고, 나무판자로 두른 마당 꽃밭, 하다못해 개울가 돌멩이까지 다 떠났다. 시간에 흐트러지지 않고 제 기억 그대로인 건, 오직 사람뿐이다.

얼굴이 맑았던 대구 계성중학교 2학년생은 평생 맑은 시를 썼다. 그로부터 50년이 넘고도 여전히 맑은 건 시 때문이다. 한국의 시인 정호승(67)은 그리하여 '노(老)소년'이다.

이야기경영연구소가 주최한 문학기행 '이야기 탐방 열차'에 올라 대구로 향한 정호승 시인과 23일 만났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로 시작하는 12행의 시 '수선화에게'가 3m쯤 될 법한 '정호승 시비(詩碑)'에 새겨져 시인의 고향 대구 수성구 범어천에 세워진 날이었다. 시비에서 옛집으로 향하는 범어천 뚝길, 아련한 기억 속 옛집 터, 독자들과 만난 토크콘서트에서 이야기를 나눈 '노소년'의 시세계는 여전히 맑았다.

'수선화에게'의 탄생설화로 시인은 운을 뗐다. 50대를 갓 넘겼을 무렵이었다. 술잔을 기울이던 친구는 정 시인에게 "인생이 왜 이렇게 외로운지 모르겠다"며 그 이유를 물었다. 시인은 "오십이 넘도록 인간의 본질을 모르느냐. 인간이 죽는 것처럼 외로움은 본질이며, 사람이니까 외로운 것"이라고 답했다. 정 시인은 "그날 귀가 후에도 '사람이니까 외로운 것'이라는 한 마디 말이 남아 '수선화에게'를 썼다"고 기억했다.

외로움은 정호승 시 세계의 기반이다. 정 시인은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비극적"이라며 "돈과 가난, 지위의 고하를 떠나 인간은 존재적으로 외롭고, 삼라만상에 외롭지 않은 존재는 없다"고 말했다. "인간의 외로움을 색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연약한 꽃대 위에 핀 수선화의 연노란 빛깔쯤 될 것"이라고도 했다.

근원적 외로움을 핑계 삼아, 그가 슬퍼하기만 한 건 아니다. 고희를 바라보는 시인의 '행복론'은, 역설적으로 부친의 철저한 실패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난이 엄습했던 어린 시절의 가족사진을 쳐다보면서도 시인은 "지금 현실에서 삶이 어떠하든 얼마나 고통스럽든, 누구나 옛 사진을 보면 아름다운 시절은 분명 있었다"며 "인간은 행복해야 할 의무를 갖고 산다. 단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다는 건 거짓말이다. 행복은 자신이 만들고 또 깨닫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홀로'와 '혼자'는 다른 것이라고도 설명했다. "상대적 의미로서의 '혼자'는 당신과 함께 있고 싶은데 나만 있어서 느끼는 것"이라고 진단한 반면 "절대적인 의미로서의 '홀로'는 내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생각할 때의 단어"라고 시인은 구분했다. 법정 스님의 "사람은 때때로 홀로 있을 줄 알아야 한다"는 명언을 소개한 그는 "이처럼 '홀로'는 자기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생각하는 영혼의 공간이자 내면의 시간을 상징한다"고 덧붙였다.

'기다림의 시인'으로도 유명한 정호승 시인은 기다림의 의미에 대해서도 말했다. 그는 "인간은 기다림이 없으면 살 수 없다"며 "나는 결핍되고 부재된 사랑을 기다린다. 다시 피어나기 위해 또 기다린다"고 했다. 시인의 시는 시인이 아닌 독자의 것이란 시론도 들려줬다. "시는 쓰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읽은 사람의 것이며, 시는 가슴에 담아가는 사람의 것"이라고 말이다.

대구 범어동(옛 신천동)은 그가 초·중·고교를 다닌 고향이다. 범어천에서 시인은 자연과 인간을 배웠다. "이 길을 걸으며 자연을 배우고 인간을 만났으며 시의 꿈을 꾸었는데, 자연과 인간을 모르면 시를 쓸 수 없다"고 말했다. 다시 본 범어천에 대해 "어머니를 만난 듯 기쁜 느낌"이라며 94세의 살아계신 노모를 회상했다. 범어천에 비친 달을 보고 부뚜막에서 시를 썼던 시인의 모친은 그의 정신적 스승이며 사랑의 상징이다.

이날 시인은 가수 김광석을 추억했다. 올해 20주기를 맞은 고(故) 김광석은, 정호승 시인이 쓰고 백창우 시인이 곡을 붙인 '부치지 못한 편지'를 녹음한 다음날 세상을 떠났다. 정호승 시로 만든 노래가 불세출의 유작이 된 것이다. 정 시인은 "서울 기독교회관 콘서트에서 김광석을 멀리서 한 번 본 인연뿐이지만, 나의 시와 그의 노래는 운명적인 끈이 닿아 있다"며 "육체는 사라져 존재하지 않아도, 김광석 노래의 정신은 남아 우리의 영혼을 적신다"고 목소리를 낮췄다.

'사랑한다'에서 정 시인은 "손가락으로 강물 위에/ 사랑한다라고 쓰고 물을 마신다(중략)/ 젊은 송장 하나가 떠내려오다가/ 사랑한다/ 내 글씨에 걸려 떠내려가지 못한다"고 적었다. 인간의 사랑은 절망을 멈춰세우고, 몰락하는 인간의 나약함까지 감싸안는다.

범어천 둑길을 함께 걷는 정 시인에게 '지금 강물에, 흐르는 저 범어천에 쓴다면 무엇을 적겠느냐'고 물었더니, 시인이 나직이 답했다. '사랑한다'보다 한 글자 줄었어도, 사실은 동의어였다. "어머니."

정호승 시인은 경남 하동 출생으로 대구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녔다.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슬픔이 기쁨에게'(1973),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1997), '포옹'(2007) 등의 시집을 펴냈고, 편운문학상·정지용문학상·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대구 = 김유태 기자 / 사진 = 한주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