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미래유산 답사를 마치고

기타
작성자
김칠환
작성일
2016-12-04 23:15
조회
2494
서울미래유산 답사를 마치고

 

서울미래유산답사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서울미래유산’이 무엇인지를 알았을까? 아카데미 수업은 참석하지 못했으나, 두 달 정도 일요일 오후가 기다려지는 시간이었다. 원래가 궁금한 것도 많고 어디든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던 것도 이유였을 것이다.

서울생활 40년이 되었건만 다니며 보이는 것만 알았지 정동, 남대문, 세종로 등등의 거리마다 골목마다 그렇게 많은 사연이 자리 잡고 있는 줄은 미쳐 몰랐었다. 불과 100여 년 전 안팎으로 일어났던 일인데도 말이다. 서울역 부근에서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바로 건너편의 세브란스 빌딩이 독립선언서와 연관되어 있었던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이번 답사를 통해 많은 것을 보고 배웠고 느꼈다, 우선 군기사터나 덕수궁 선원전 터가 다른 건물을 세우기 위해 발굴하다가 발견됐다는 것은 이해되지 않았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를 만들었고, 세계기록유산에 등록된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하여 승정원일기 등등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도 기록에 강했던 나라가 불과 100여 년 전 궁궐이나 정부 기관의 건물조차 기록이 없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특히 정동은 ‘거리에 미학을 입히자’에서도 다녀왔고, 본 프로그램에서도 두 번을 답사했다. 조선말에 외국의 공사관들이 자리 잡고 아울러 서구의 신문물을 받아들인 곳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망해가는 조선의 아니 대한제국의 모든 것을 간직한 역사의 현장이었기 때문에 갈 때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임금이 외국의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곳도 정동이고, 을사늑약을 체결한 중명전도 정동에 있고, 당시에 자리 잡았던 서방 각국의 대사관도 아직까지 그 지역에 있으니 대한제국의 역사가 생생하게 전해지는 곳이었다.

정동을 찾을 때마다  ‘국가불행시인행‘(國家不幸詩人幸, 나라의 불행은 시인의 행 이련가, 청나라 조익이 쓴 원호문의 評詩 일부) 이란 글귀가 떠 올랐다. 이 말은  원래  깊은 고뇌가 있어야 좋은 시가 나온다는 뜻이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직역해 보면 이야기 거리가 그만큼 많다는 것 아닐까? 근래에 정권이 흔들리는 마당에도 수 없는 이야기 거리가 등장하는데 하물며 500년 역사의 나라가 기울어지는 데는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정동은 그 역사를 이야기 해주는 장소였다.

얼마 전에 서울시에서는 정동일대에 ‘대한제국의 길’을 조성한다고 발표했다. 모두 이번 답사에서 찾아봤던 곳이라 낯설지 않았다. 또 문화재청에서는 아관파천의 아픔이 서린 ‘고종의 길’도 복원한다고 발표했다. 일국의 임금이 다른 나라 공사관에 피신한 길을 복원해야 할 가치가 있을까?

그러나 만약 복원을 한다면 앞으로 우리나라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관료와 국회의원 등은 선출되거나 임명됨과 동시에 그 길을 찾아 앞으로는 구한말과 같은 일이 절대 없도록 하겠다는 맹세를 하는 장소로 활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마침 어느 신문에선 “주변 4강 모두 스트롱맨....망국 직전 구한말과 비슷”  ‘미 트럼프, 중 시진평, 일 아베, 러 푸틴’ 이란 제목을 뽑았다. 정동길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기사였다. (10월 10일)

남대문과 태평로, 한양도성과 성곽길, 인사동과 동대문 책방길, 서촌(세종마을). 계동과 돈화문, 정동과 남촌, 남산 예장 자락 그리고 광희동에서 장충동까지 다시 떠 올린다.

마지막 답사를 하던 남산 성곽 아래는 철늦은 단풍이 꽃비를 만들어 우리들을 배웅하고 있었다.(사진)

앞으로도 이와 같은 좋은 프로그램이 계속 이어지기 바라며, 이번 답사를 주관하고 함께하신 이야기경영연구소 이훈 대표님과 황병기 박사님 그리고 지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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