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하, 치일빠다. [북촌 한옥마을 탐방후기]

서울에 미학을 입히자
작성자
張 雄 鎭
작성일
2016-03-14 19:39
조회
14290

북촌 한옥마을 탐방 후기


 

  주객관계의 초월, 무아지경의 경험. 서울도서관과 이야기경영연구소에서 아주 좋은 문화탐방프로그램을 만들어 주셨다. 서울시민을 위한 프로그램, 서울의 거리와 골목을 거니는 산책, 서울에 미학을 입히자. 이론적인 지식은 강연 주관 교수님의 저서, <도시에 미학을 입히다>라는 책이 이론적인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사람구경이 제일이라는 고명석 교수님의 강의는 시종 금상첨화였다. 게다가 20162월 마지막 주 일요일(28일 오후), 春來不似春을 느끼는 적시의 降雪은 한옥마을 풍경을 동양화 속 눈꽃이라는 최고의 풍경을 만들어 주었다. 눈 내리는 한옥마을은 오래전부터 약속된 타이밍인 것처럼 미러클처럼 時空 없이 펼쳐졌다.

   24절기 중 첫 번째인 입춘이 지나 봄은 이미 온 것 같다. 그래도 기운의 느낌은 사람들의 옷차림과 나신의 나무들로 보아 아직 겨울이다. 겨울의 끝에서 북촌 한옥마을 탐방은 하늘의 하얀 선물, 눈꽃으로 검은 기와 녹색의 향나무, 소나무, 북악산, 경복궁, 삼청동 자연과 한옥이 별천지를 오랜만에 볼 수 있게 해주었다. 나는 느꼈다. 한옥과 북악산의 모습이 자연과 인간은 둘이 아니로구나.

   둘도 아니고 둘도 없다. 요즘 나는 미학적 동양인문학(서명, 미학으로 동양인문학을 꿰뚫다)을 공부하고 있다. 해서 서울시 미학이야기, 동대문도서관 한국의 미와 문학이야기를 신청해놓은 상태이다. 문화탐방과 소일거리에 공부하는 덤으로 논문 주제라도 발견할 수 있을까 해서이다. 미학은 우리말, 한국의 미로는 풍류이다. 미에 대한 이야기이다.

   서울시 미학이야기의 첫 번째 대상은 서두에서 밝혔듯 북촌 한옥 마을이었다. 서울도서관에서 소정의 이론지식으로 무장하고 밖으로 나서자 눈이 세상을 뒤덮고 있었다. 미학적 동양인문학 책에 나오는 당대 방온 거사가 감탄한 눈이 펑펑 쏟아져도, 다른 곳에 떨어지지 않는구나!”의 표현처럼 시공을 초월한 무아지경의 설국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북촌 한옥 마을은 남북으로 안국역에서 정독도서관을 지나 삼청동주민센터까지의 마을이다. 동서로는 학고재 입구에서 선재미술관을 거쳐 현대빌딩 뒤쪽으로 상남도서관까지이다. 이 지역은 모두 다 돌아보기에는 넓은 지역이다. 그래서 한옥의 핵심지역만 돌아보기로 하고 도보와 교통편으로 이동한 탐방단은 학고재에서 만나기로 했다. 경유 코스는 정독사거리 선재미술관에서 출발하여 정독 오른쪽 골목길을 걸었다.

   한옥 골목을 얼마간 걸으니 가회동 백인제가옥이 나왔다. 자연과 사람을 무섭게 위협하지 않는 다정다감한 한옥 마루에 누워보고 싶다. 방문 열어놓고 강설의 일부가 되고 싶다. 눈 내리는 겨울밤 독서삼매경에 빠지고 싶다. 들어가 살고 싶은 근원의 집, 이쯤에서 눈발이 더욱 함박눈이 되어 기와며 향나무, 소나무가 별천지의 배경이 되었다. 탐방단은 여기서 한옥을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카메라에 담았다. 회자정리라던가. 아쉬움들을 뒤로하고 다음코스로 이동하려니 자꾸 뭔가를 챙기고 싶어 인쇄된 자료들을 챙겨서는 대문을 나섰다.

   백인제 가옥을 구경하고 다시 오른쪽 골목길로 나오니 아주 오래되었다는 돈미약국이라는 약국이 있었다. 골목을 지나고 지나 회화나무 게스트하우스와 청춘재를 지난 것 같다. 교과서나 잡지, 신문 등에 사진으로 많이 보아온 북촌 한옥마을의 핵심 골목길에 도착했다. 오르막길이다. 관광객이 많아 훤히 트인 골목길이 좁아보였다. 다양한 얼굴에 다양한 외투와 한옥 입은 내외국인들이 설왕설래했다. 나는 여기서, 아니 우리는 여기서 많은 한옥의 정취를 카메라에 담았다. 상하좌우로 프레임 잡아보는 그대로 하나의 작품이 되었다.

   눈발에 홀린 것 같다. 以我觀物에서 以物觀物, 저절로 나는 눈 속으로 녹아들어갔다. 정철의 관동팔경 묘사에 나오는 풍경의 일부를 보는 것 같다. 드디어 불이법문.

   가회동 31번지길. 탐방로를 더듬는 지금 지도를 보니 도로명 주소 북촌로 11길을 따라 걸은 것 같다. 오를 대로 올라서 이제는 내려가는 느낌이다. 아쉬움에 서쪽과 남쪽을 내려다보았다. 멀리 안국역 건너 수운회관이 눈에 들어왔다. 더 멀리 아리까리 남산과 엔타워도 서울빌딩들의 병풍 배경이 되었다. 다시 눈을 돌려 일행을 찾으니 끝에 있는 것 같아 가던 길을 재촉하였다.

   안개꽃과 눈발 사이로 북악산이 모습을 드러냈다. 경복궁 끝 쪽에 청와대 같은 한옥의 곡선이 북악산의 곡선처럼 마치 새끼 북악산 같았다. 주택가 빽빽하던 곳에서 숨죽이며 이동하던 일행은 조금 여유 있는 길로 나오니 주변의 경관에 탄성이 저절로 이어졌다. 기와집 골짜기에 내려다보면서 사진을 찍었더니 거북의 등 같기도 하고 보리밭처럼 무늬가 이랑이 되었다. 참으로 많은 사진을 카메라에 담으며 동영상에 담기도 하였다. 지금까지의 관광과 탐방의 모든 회포를 카메라에 담고서 정리의 시간을 갖고자 했다.

   아래로 또 아래로 정독도서관 옆구리를 돌고 또 돌아 우리는 선재미술관 위쪽의 도도라는 카페에 도착했다. 분위기 있는 나무 테이블과 의자카페 고풍스런 벽돌, 그리고 격자문 사이로 펼쳐지는 근원경은 또 다른 아름다운 멋이었다. 콩 다방 별 다방 커피보다 이 카페의 커피 맛이 더 비싸게 느껴졌다. 카페 여기저기 순찰해보니 화장실도 깨끗하고 온기 있게 자리 잡고 있었다. 특이한 의자도 있었다. 싸리비 만드는 재료 같은 가는 목살로 엮어 만든 의자가 예술이었다.

   떼지어 돌아다니는 재미. 이번 탐방은 서울시민만 모인 것은 아니다. 영남에서 호남에서 충청도와 인천에서 서울시민과 함께 했다. 팔도사나이 노래처럼 재미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아주 좋은 사람구경에 집 구경을 하였다. 한국미의 절정, 한옥마을은 언제나 정겨운 골목을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밤은 어둡고 고독해지는 것 같다. 북촌 한옥마을에도 소위 젠트리피케이션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이를 어쩌나 슬럼가, 빈민촌, 빈민굴이 되면 아니 되옵니다.

   과거에 개발과 보존 갈등을 겪고 보존하면서 새로운 가치가 창출되었다. 현재는 그런대로 미학적인 관광객들의 풍류의 멋을 선도하는 서울의 명소가 되었다. 모든 것이 서구화 되었다. 외국 관광객들은 한국에서 한국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가볼만한 곳이 별로 없어서 실망한다고 한다. 이제는 떨어져가는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재생시켜서 미래에서 다시 과거로의 환원, 회귀에 대비해야 한다. 다시 그리워하는 날, 그것이 없다면 후회할 것이다.

   서울시민이 된지 30년이 넘은 것 같다. 나에게 이번 북촌 한옥마을 탐방은 처음이 아니다. 처음에는 20여 년 전 외사촌들과 북촌마을을 탐방하였다. 두 번째는 노틀담수녀회 야학에 다니면서 계동이며 북촌일대를 돌아본 기억이 난다. 몇 년 전에는 청소년지도사로서 꽃피는 대안학교에 청소년지도를 위해서 갔던 곳이라 이 지역과는 상당한 인연이 있는 것 같다. 그 후 작년 가을 고려사이버대에서 세미나를 하면서 지나다니던 길이다. 최근까지 여러 번 다니면서도 한옥의 정취를 심히 음미하지를 못했다. 20~30여 년 전, 그때는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지금처럼 관광객이 많지는 않았다. 발전인지 도약인지 명소로 알려지면서 상인들도 늘어났고 아기자기한 볼거리와 주변 환경도 시너지효과를 보이고 있다.

   2002년 월드컵축구경기대회에서 드러난 민족의 저력, 국민의 단결력이 비빔밥 문화에서 나온 것이라 분석한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에서 보여준 우리만의 것이 세계화의 근원이라 한다. 지금 우리가 우리의 문화를 탐방하는 것은 내일과 미래를 위한 가장 소중한 투자라고 생각한다. 늦기 전에 우리는 독창적인 한국의 미를 보존하고 재생해야 한다. 한국의 여백미를 살리면서...

 
첨부파일 : 한옥마을.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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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3-19 19:34
    장웅진 선생님의 탐방후기를 읽으니, 목화송이 같은 함박눈이 퍼얼펄 내리던 북촌 어귀에 다시금 들어선 것만 같습니다. "以我觀物에서 以物觀物로"라는 선생님의 표현만큼 先景後情을 맛있게 그려낸 말을 그 누군들 어찌 찾아낼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