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할머니의 ‘아들아’ 시 제목 낭독부터 코끝 찡했다”

작성자
leesuin
작성일
2016-05-30 09:20
조회
1398
기사 게시 날짜 2016.05.29

28일 ‘칠곡 시 인문 열차’ 행사
할머니 시인들 자작시 낭독에
장석주 박연준 시인 부부와
독자 70여명 등 참석자 감동



“칠곡 할머니들 시집 <시가 뭐고?>를 읽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시란 누구나 쓸 수 있는 겁니다. 자기 삶의 진정성을 담을 수 있다면 말이죠. 꾸밈 없이 자기 목소리로 자기 삶을 증언할 때 무시무시한 힘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시집 속 몇 작품에서 저는 말로 하기 어려운 전율을 느꼈습니다. 오늘 오신 여러분들도 각자의 시를 써 보시기 바랍니다.”

28일 오후 경북 칠곡군 약목면 남계리 신유 장군 사당 앞 마당. ‘칠곡 시(詩) 인문 열차: 사랑, 시로 꽃피다’ 행사에 참가한 장석주 시인이 독자들 앞에 나섰다. 이야기경영연구소 주관으로 열린 이날 행사는 뒤늦게 한글을 배우고 내처 쓴 시로 합동 시집 <시가 뭐고?>를 낸 칠곡 할머니들, 그리고 지난해 말 산문집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를 내며 ‘책 결혼식’을 치른 부부 시인 장석주·박연준의 만남으로 관심을 모았다. 독자 70여명이 서울에서 기차편으로 내려와 행사에 동참했다.

장석주 시인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일을 하는 게 시인들이지만, 그렇게 쓸모없는 시인들이 쓴 시가 우리를 좀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든다”며 “서구에서는 시가 퇴화되는 장르이지만 한국의 시문학 수준은 세계적이며 그렇기 때문에 번역만 잘 되면 노벨상 수상도 그리 멀지 않다”고 강조했다.

박연준 시인도 “<시가 뭐고?>에 실린 시들은 별 커다란 이야기를 담지 않았는데도 읽을 때마다 눈물 핑 돌게 만드는 지점이 있다”며 “시를 쓰는 사람으로서 초심을 돌아보게 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곽두조·김두선·박월선·박금분·강금연 할머니 등 <시가 뭐고?>의 공동 저자인 ‘할머니 시인’ 다섯분도 참가해 자신이 쓴 시를 읽었다. 박월선 할머니를 제한 네분은 <시가 뭐고?>에 실리지 않은 ‘신작’ 시를 낭독했는데, 특히 강금연 할머니의 ‘아들아’가 큰 반응을 얻었다.

“내 아들 나가 시끈 물도/ 안 내빼릴라 캐다/ 그 아들 노코 얼마나 조안는데/ 이제 그 아들한태 미안하다/ 내 몸띠가 성하지를 모타이/ 아들 미느리 욕빈다/ 자나깨나 걱정해주는/ 아들이 참 고맙다”(‘아들아’ 전문)

강금연 할머니는 시를 읽다가 “우째 눈물이 날라카나”라며 낭독을 중단하기도 했는데, 낭독 뒤에는 손주들이 준비해 온 꽃다발을 증정해서 박수를 받기도 했다. 강 할머니의 낭독을 들은 박연준 시인은 “할머니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아들아’라는 제목만 읽는데도 시를 다 들은 것처럼 코끝이 찡했다”고 말했다. 박 시인은 이어 <시가 뭐고?>에 실린 곽두조 할머니의 시 ‘기부니 조타’를 낭독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시인들뿐만 아니라 독자들 역시 낭독에 참가했다. 특히 기형도가 오래 살았던 경기 광명의 ‘기형도 시인학교’ 회원인 최평자씨는 윤동주의 ‘서시’와 기형도의 ‘빈집’을 함께 낭독해 박수를 받았다. 앞서 강연에서 장석주 시인은 “윤동주와 기형도는 연희전문과 그 후신인 연세대 출신이라는 점, 서른 이전에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요절했다는 점, 생전에 시집 한권 내지 못하다가 사후에 낸 시집으로 유명해졌다는 점 등에서 운명적으로 닮은 삶을 살다 갔다”며 “시인은 불행을 피하는 대신 정면으로 감싸 안아서 그것을 시의 질료로 삼는 존재”라고 말하기도 했다.

칠곡/글·사진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